[서시공스토리] 창립 40주년 기념 퇴직임원 인터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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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홍보실 | 조회수 | 2491 |
등록 부서 | 경영전략본부 | 등록일 | 2023-08-24 11:16:17.0 |
서울의 중요시설과 사업을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 직원들의 숨은 이야기, 공단의 여러 사업을 통해 만나본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화를 나누는 코너 <서시공스토리>
대한민국 수도이자 중심지 서울, 이 거대한 도시에서 서울시설공단은 시민들이 보지 못하는 곳곳에서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설공단 본사는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본사 사옥 옆으로는 공단이 관리하는 서울도시고속도로 내부순환로 구간이 지나가고 있고 본사 바로 아래에는 공단이 전체구간을 관리하는 청계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1983년 9월 1일은 서울시설공단이 설립된 날입니다. 곧 며칠 뒤 9월 1일이면 서울시설공단이 전국 최초의 지방공기업으로 설립된 지 4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첫 현판식은 1983년 11월 11일, 당시 서울시설공단(초기 법인명:서울시설관리공단)이 입주해 있던 방배동 지하철공사 사옥에서 이루어졌는데요.
공단 현판식에는 이재희 초대 이사장(좌측)과 김재명 지하철공사 사장(가운데), 여러 임직원이 함께했습니다.
1983년 설립 이후 40년 동안 서울시설공단은 다양한 시설과 인프라 운영 노하우를 쌓아오며 대한민국 최고의 시설 및 인프라 운영 전문 공기업으로 탄탄히 자리매김하였는데요.
공단이 운영하는 인프라에는 공단 최초 사업이었던 지하도상가, 동대문패션 상권의 중심 ddp패션몰, 청계천과 서울월드컵경기장, 고척스카이돔, 장충체육관, 서울어린이대공원 같이 서울시민과 서울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서울을 대표하는 많은 랜드마크들이 있습니다.
지하도상가
ddp 패션몰
청계천
서울월드컵경기장
고척스카이돔
장충체육관
서울어린이대공원
그리고 따릉이나 장애인콜택시와 같은 서울시민의 이동권 향상을 위한 서비스, 추모와 장례를 위한 장사시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콜택시
서울시립승화원 & 서울추모공원
공단은 또한 대규모 기반 시설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많은 노하우들을 축적해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를 토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기반 인프라를 서울시민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도시고속도로
자동차전용도로 유지 및 환경관리
자동차전용도로 교통정보 제공
자동차전용도로 터널관리
공영주차시설 및 환승주차장
상수도 검침 및 교체
도심지 소규모 공사감독
지하공동구 관리
공단이 40여 년간 이 자리에 위치하기까지는 서울시 전역에서 시민의 안전과 쾌적한 생활을 위해 다양한 업역에서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온 전?현직 공단 직원들의 각별한 애정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번 서시공인터뷰는 지난 40년간 공단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자 공단을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많은 선배님을 대표해 퇴직하신 선배님 한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뜨거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 서울 도심은 어느새 휴가철을 맞이해 다소 한산해진 느낌입니다.
무더위가 더해가는 오후 무렵이지만 그래도 도심지 아래 청계천 변에는 더위를 피해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도심지 아래 펼쳐진 푸르름 가득한 물길에는 시원한 바람도 불어옵니다.
오늘 서시공스토리의 주인공을 만날 장소도 여름이 깊어지는 청계천 산책로 나무 그늘 아래입니다.
“유 실장 오랜만이야. 김 팀장도 전에 봤었지? 최 차장은 더 멋있어졌네.”
청계천 물길에서 오랜만에 뵙게 되는 김윤기 前복지경제본부장님이십니다.
2018년 공단을 퇴직하신 뒤 2018.11~2022.10까지 영등포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을 역임하시고 올해 6월까지 경복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신 김윤기 前 복지경제본부장님(이하 본부장), 퇴직 때까지 평생 공단인으로 걸어오신, 서울시설공단의 40년 역사와 함께한 산 증인이십니다.
오늘 서시공스토리 인터뷰이로 모신 김윤기 본부장님을 뵙기 위해 공단 홍보실장과 팀장이 함께 나와서 푸르름 가득한 청계천에서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눕니다.
“본부장님,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 내어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본부장님을 어렵사리 섭외하신 홍보실장께서 감사 인사를 전하십니다.
“아니야. 평소 좋아하던 후배들이 온다고 해서 흔쾌히 나왔지. 이렇게 좋은 자리에 불러줘서 내가 고마워.”
오랜만에 뵙게 된 김윤기 본부장님은 퇴직하시고서 더 여유 있으시고 젊어지신 듯합니다.
“얼마 전 (영등포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을) 그만두고서는 산에 더 자주 다니고 있어.”
요즘 건강의 비결이 등산이라고 하시는 김윤기 본부장님. 재직 중 이실 때는 공단 산악회 활동을 꾸준히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청계천에는 오랜만에 왔구먼. 청계천 초창기 때는 걷기대회 행사한다고 주말마다 찾던 곳인데 그때보다 나무들이 훌쩍 큰 것 같아.”
어느덧 청계천이 고가를 허물고 예전 물길을 복원해 다시 청계천이 흐르게 된 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2005년 10월, 청계천에 새 물이 흐른 지 어느새 20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하니 청계천의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시설공단 직원들에게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주옥같은 시간입니다.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먼. 세월이 참 빠르지?”
청계천 물길을 바라보시던 본부장님께서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십니다.
김윤기 본부장님은 공단이 설립된 1983년 이듬해인 1984년 첫 신입사원 모집 때 입사하셨는데요.
교통운영처, 도로환경처, 장애인콜택시운영처, 상가운영처등 공단의 여러 부서를 두루 거치시며 역량을 발휘하시다가 2013년~2015년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임원이 되시고서 2015~2018년까지 복지경제본부장을 역임하시다가 퇴직하셨습니다.
이후, 재직시절 서울시설공단에서 쌓아오신 역량을 토대로 영등포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으로 2018년 1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재임하시다가 퇴임하셨는데요. 사원으로 공단에 입사해 구 산하 공단 이사장까지 거치신 입지전적인 경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청계천을 산책하고서 김윤기 본부장님과 함께 청계천 바로 옆에 위치한 을지로 지하도상가를 방문했습니다. 을지로 지하도상가는 김윤기 본부장님께서 상가운영처장, 복지경제본부장을 역임하시면서 인연이 깊은 곳인데요. 1983년 공단이 첫 사업을 시작한 상가로써 공단의 40년 역사에 의미가 깊은 지하도상가입니다.
을지로 지하도상가 (1983년)
을지로 지하도상가는 1980년대 당시 서울을 대표하던 쇼핑센터로 시민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오기도 했는데요.
그동안 다양한 리모델링과 활성화를 거쳐왔고 현재는 쇼핑 공간의 역할과 더불어 서울 도심지에서 지하보도로도 서울시민과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하도상가는 정말 오랜만에 방문했지. 그땐 여러모로 힘들기도 했었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와보니 감회가 새롭네.”
퇴직하시고서는 처음 을지로 지하도상가를 방문하셨다는 김윤기 본부장님은 걸음걸이를 늦추시며 찬찬히 상가 곳곳을 둘러보십니다.
“유 실장이랑 같이 상가에서 근무한 기억이 나네. 그땐 많이 힘들었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시며 함께 미소 지으십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네요.”(웃음)
본부장님은 지하도상가 곳곳에서 포즈도 취해보시며 지난날의 추억에 잠기시는 듯했습니다.
“최 차장도 그때 나 많이 도와줬었지.”
오랜만의 지하도상가 방문에 감회가 새로우신지 김윤기 본부장님은 상가 이곳저곳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십니다. 젊음을 함께했던 여러 추억이 떠오르시는 듯합니다.
을지로 지하상가를 오랜만에 둘러보시고 나서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인터뷰 장소 또한 서울의 근현대사와 함께한 오래된 음식점인데요. 한껏 뜨거웠던 여름 오후의 햇살을 식히며 김윤기 본부장님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습니다.
Q. 본부장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선뜻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본부장님께서 공단에 입사하신 연도와 몇 년간 몸담으셨는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제가 84년도 5월 16일, 그러니까 우리 공단 창립이 83년도 9월이었는데 최초 신입사원 모집하는 건 84년이 처음이라 공고문을 보고 입사한 것으로는 최초 신입사원입니다. 84년 5월 16일 입사해서 34년간 근무했죠.
1980년대 재직시절 (서울어린이대공원)
Q. 그러면 공단이 생기자마자 바로 들어오신 거군요.
A. 그렇죠.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Q. 그러면 그동안 많은 부서에서 근무하셨을 텐데요. 혹시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애정이 가는 부서나 사업들이 있으실까요?
A.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공단에 근무하면서 좀 어려운 사업 부서에 많이 근무했던 것 같아요.
지하도상가, 장애인콜택시, 도로환경처 등등 사업 부서 쪽에서 근무를 오래 했는데 제일 그래도 어렵고 힘들었던 부서는 상가 쪽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 당시 지하도상가 태생이, 서울시에서 지하도상가를 조성한 게 아니고 70년대에 방공호 개념으로 시작된 거였어요.
그 당시에는 자유롭게 상인들이 매매도 하고 그러다가 공단에서 인수하는 순간 공유재산법이나 지방계약법에 의해서 5년에 한 번씩 공개입찰 하도록 법령이 적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인분들과 마찰이 많았죠.
상인분들은 자기 재산권으로 보고 공단에 민원을 계속 제기해서 거의 5년에 한 번씩은 전쟁터였다 이렇게 보면 되죠.
제1의 기피 부서가 지하도상가 근무였으니까 그래서인지 그때가 기억에 제일 많이 남고 보람도 많이 있고 그랬습니다.
우리 유홍선 실장도 나와 같이 근무해서 잘 알잖아요. (함께 웃음)
또, 근무했었던 장애인 콜택시도 어렵고 상가도 어렵고 이렇게 어려운 부서에, 근데 거기를 한번 간 게 아니고 한두 차례씩 이슈가 일어났을 때 자꾸 발령이 나니까 한때는 저도 ‘아, 왜 자꾸 나만 여기로 오는 거지’ 이런 자괴감을 느낄 때도 없지 않았었어요.
그래도 지나고 보니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한테 많은 도움이 되었고 문제해결 능력이나 이런 것들을 내재시킬 수 있었던 하나의 좋은 기회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Q. 당시에는 그래도 많이 힘드셨을 텐데요.
A. 힘들었죠.
당시 좋은 직원들이 함께 있지 않았다면 헤쳐 나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도 지하도상가에서 제일 보람 있었던 일은 공유재산에 포함되어 관리는 하지만 지하도상가의 태생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편의시설 설치 조건부 계약 방법을 공단에서 건의해 전체적으로 노후한 지하도상가 시설을 리모델링했죠.
약 1,400억 정도 되는 노후시설 개보수 비용을 상인들이 부담하고 상인들에게는 안정적으로 영업할 그런 기회를 주고 이런 정책적인 것들을 어려운 와중에서도 만들어 내서 지하도상가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직원들과 같이한 그 과정들이 지나와서 돌아보면 굉장히 뜻깊고 보람된 시간이었죠.
장애인콜택시 직원 운전 봉사활동 기념사진 (2010년)
Q. 다음에 여쭤볼 게 가장 뜻깊고 보람되셨던 일을 여쭤보려고 했는데 방금 말씀으로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
A. 또 생각나는 일이 있죠.
제가 2008년 도로환경처장으로 발령받았는데 그 당시 국제 곡물 가격이 폭등해서 한우농가가 사룟값 폭등으로 굉장히 어려울 때가 있었어요. 제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 사정을 잘 알았어요. 그런 내용을 신문에서 보고 고민을 했죠. 서울 시내 도시고속도로는 구간이 길잖아요. 서부간선도로나 동부간선도로, 올림픽대로 등 도로변에서 제초 작업을 하는데요.
이 풀을 한우농가의 사료로 식용이 가능한지 기술연구원에 의뢰를 해봤어요. 왜냐하면 도로변이기 때문에 매연이나 카드뮴 같은 오염물질이 걱정되었는데 의뢰 결과 식용가능이라고 검증이 돼서 경기도에 연락을 해봤습니다.
한우농가가 어려우니까 우리 서울 시내 도시고속도로에 있는 풀을 한우농가에 사료로 제공하겠다 그러니까 경기도에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자기네 경기도에도 많은 천변에 제초 작업을 하는데 서울에서 먼저 연락해 와서 한우농가에 대한 어려움을 해소해 주겠다고 하니 깜짝 놀란 거죠.
그래서 그때 도시고속도로, 청계천에서 제초한 풀을 기증하기로 고양 한우영농조합하고 MOU(업무협약)를 맺었어요.
한우농가 풀사료 기증 협약식 (2008년)
한우농가 풀사료 기증 (2008년)
도농상생 강화도 달빛동화마을 봉사활동 (2013년)
1년여간 풀 사료를 제공했는데 그걸 인연으로 농촌과 도시가 자매결연도 맺으면서 도농 교류로 봉사도 하고 그랬지요.
'결초보은'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잖아요. 당시 언론에서 '결초상생'이라고 하면서 크게 보도를 해준 적이 기억납니다.
청계천 고산자교 아래에 보면 한우 석상이 있어요. 그 유래가 바로 고양 한우농가, 한우 영농협동조합에서 이런 상생을 기념으로 석상을 세워주셨죠.
Q. 아 그 한우 석상이 그래서 온 거군요?
A. 그렇죠. 고산자교 밑에 지금도 있을 거예요. 도시고속도로에 있는 풀하고 청계천에 있는 풀을 베어다가 한우 농가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실어다 주고 한 것에 대한 고마움, 그때 당시 처장이, 아니 팀장이 김종락 팀장이었어요. 지금 처장하고 있죠?
Q. 지금 공사 3처 처장입니다.
A. 아, 3처. 그 김종락 팀장이 고생을 많이 했죠. (웃음) 그 뒤에 농림수산부에서“도농상생 대한민국 모델이다” 이러면서 농림수산부장관 기관 표창도 주시고 그래서 그때가 굉장히 뜻깊었던 시간이죠.
우리가 공단에서 사업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작은 도움을 주고 기여했던 그런 일들이 상당히 보람이 있었어요.
지방공기업학회 (2013년)
Q. 업무를 하시는 와중에 경험을 통해 그런 가능성을 보신 것 같습니다. 우리 업무뿐 아니라 다른 지역과 같이 상생할 수 있는 뜻깊은 일을 하셨습니다.
A. 근데 원래 공단이 하는 일들이 그런 성격을 가진 것 같아요. 공공을 위한 일들이니까요.
공단이 처음에 서울시에서 을지로 지하도상가 딱 하나 받아서 창립됐잖아요. 그 후에 다른 사업을 인수하기 위해서 우리 선배들이나 동료들이 노력을 많이 했었죠.
서울시에서 사업을 가져가라 이렇게 하기 전에 우리가 가져올 사업이 뭐가 있는지에 대해서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어요.
서울시에서 어떤 사업이 시작되면 그때는 기술력도 상당히 부족하고 그랬지만 참여 시켜달라 이런 건의를 먼저 했어요.
직원워크숍 (2013년)
처음에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공단을 용역회사 직원 정도로 바라보다가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참여하려는 의지를 계속 표명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우리를 대하는 마인드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남산 혼잡통행료 사업도 처음에는 공단하고 전혀 연관성 없이 추진되다가 우리가 먼저 준비단으로 편성해 달라고 해서 그 추진단에 들어가서 업무협의를 지속해 온 결과로 남산1호터널 혼잡통행료 징수시스템을 우리에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오더라고요.
세세한 부분은 도로공사에서 노하우를 전해 받고 또 이런 일이 연관되니까 서울시립승화원도 공단에서 직접 건축할 수 있었죠. 서울시에서 인수한 게 아니고 말이죠.
그래서 장충체육관 리모델링이나 기타 등등 제가 본부장 할 때도 완전히 확정된 다음에 그걸 고치려면 예산이 많이 들어가니까 설계나 시공단계에서 우리 직원들이 참여하기 위해서 애도 많이 썼고 그만큼 성과도 있었고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결과적으로도 상당히 보람된 일이었다 싶네요. 그리고 그 당시가 좀 그립기도 하고.
Q. 입사하실 무렵 초창기 회사 분위기나 요즘의 사내 문화 변화 변화도 체감하실 텐데요.
A. 정말 많이 변했죠. 초창기에는 군대문화가 좀 강했던 것 같아요. 여차하면 기합이나 선착순처럼 군대에서 하던걸 회사에서도 경험하곤 했으니까요.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죠? (함께 웃음)
장묘사무소 개소식 (1987년)
직원 종합체육대회 (1990년)
당시에는 주로 단체중심의 조직 문화가 강했는데 요즘은 직원 개인의 사생활이나 휴가, 워라벨, 가정 친화적인 정책도 많아지고 직원을 존중하는 문화가 강해진 것 같아요. 여러모로 수평적인 사회로 변화되는 것이 체감됩니다. 그리고 또 변화된 공단의 위상도 느껴지고요.
이제 지금은 우리 공단이 기술력도 탄탄하게 쌓았고 기술사도 많아졌고 사업도 안정화됐지요.
하지만 우리 공단의 업무 성격이라는 것이 사실은 빛이 나고 이런 업무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데서 정말 시민한테 봉사하는 업무들이 많잖아요. 장애인콜택시도 그렇고.
구룡터널내 시설물 점검
예를 들어 터널에서 조명을 교체한다든지 시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시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지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런 역할들을 지난 40여 년간 해 온 겁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들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직원들,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도 이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가장 중요한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자부심, 시민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이제 우리 공단이 지나온 40년 동안 정말 탄탄하게 그런 기술력을 축적해서 지금은 어디에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공단으로 발돋움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이렇게 쌓아놓은 기술력을 집약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그런 방향으로 가면 좋지 않겠나 싶네요.
Q. 방금 하신 말씀과 약간 연관된 얘기일 수도 있겠는데 공단 본부장으로 계시다가 퇴직하신 다음에 영등포구 시설관리공단 이사장님으로 부임하셨는데요.
외부에서 바라본 공단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막상 서울시설공단에서 자치구 시설공단으로 옮기다 보니까 아 정말 (서울시설공단이) 좋은 직장이었다 싶었어요.
서울시설공단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자치구는 재정이나 사업 범위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서울시설공단은 그래도 전국 최초 공단으로 대한민국의 지방 공기업으로 자리매김했지요.
시민모니터 위촉식 (2014년)
그 후에 부산, 인천, 대구 등등 이런 곳에서 벤치마킹하러 많이 왔었잖아요. 그런 지방공기업, 광역 단위, 그다음 시군구 가리지 않고 서울시설공단을 모델로 해서 빠르게 다양한 업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동안의 축적된 노하우를 돈 안 받고 다 알려주었지요.
그렇게 우리가 대한민국의 지방 공기업 수준을 상당히 높여놓았다 자평합니다.
자치 공단에 가서는 제가 서울시설공단에서 배운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예산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정부 공모사업이나 서울시 공모사업, 민간 참여사업 등을 활용해서 여건을 그래도 좀 개선했다 생각해요.
직원복지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서울시설공단의 사항들을 참고해서 예전보다 증진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창립 이후 처음 최우수 공기업 평가도 받는 등 당시 직원들의 사기도 높아졌고 그래서 저도 보람이 있었죠.
간부 서비스마인드 교육 (2004년)
Q. 이제 본부장님께선 시민으로 돌아가셨는데요. 시민의 입장에서 공단을 바라보는 소회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A. 돌아보니 서울시설공단에 스물여섯에 들어왔더군요. 어쨌든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상임이사까지 갔었는데 회고해 보면 정말 좋은 선배와 후배들을 많이 만났다고 생각해요.
좋은 직장의 요소를 세 가지로 뽑을 수 있는데요.
첫째,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느냐 둘째, 좋은 동료가 있느냐 셋째, 비전이 있느냐
우리 공단은 세 가지를 다 갖춘 기업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자기가 어떤 노력으로 개선하면 바로 시민한테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곳,
그다음에 좋은 동료가 있는 곳,
그리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대한민국 최초의 공단으로 창립해서 지방공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지금도 굉장히 뿌듯하고 후배들을 보면 보람 있고 자긍심도 느끼고 그렇죠.
그래서 앞으로 향후 100년이 탄탄한 그런 공단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저는 확신하고 시민으로 돌아갔지만 늘 우리 서울시설공단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 질문을 드릴 텐데요. 그간 쌓아 오신 경험이나 여러 가지 노하우를 통해서 지금 창립 40주년을 맞은 공단 후배들에게 일러주고 싶으시거나 전하고픈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A.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작은 이익이나 이런 것 때문에 관계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지나고 보니까 정말 옆에 있는 동료와 화합해서 힘을 합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그리고 또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자기 책임으로 돌려서 자기가 손들고 나가는 것,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우리 공단은 기본적으로 그런 특성들이 있어서 앞으로도 굉장히 좋은 직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고 돌아보면 그런 선배와 후배들을 만나서 행복한 직장이었다, 이렇게 늘 생각하고 있어요.
이야기가 되었을는지 모르겠네요.
Q. 마음에 와닿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귀하신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A. 다시 한번 우리 공단 40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저는 신입사원부터 공단맨으로 지금까지 제 마음속에 서울시설공단이 항상 자랑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후배 여러분들도 자랑스러운 공단 잘 키워 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긴 인터뷰 시간 동안 공단의 역사와 함께 해오신 김윤기 前 본부장님의 경륜과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말씀과 함께한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공단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시민에게 믿음을 전해주고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서 동료들과 힘을 합해 일해 나가주길 바라는 마음,
우리는 이미 최고이고 또 40년의 역사를 통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공기업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음을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서울시설공단에 대한 자부심, 지금도 공단에 몸담은 후배들에 대한 애정과 애틋한 마음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늘 건승하시고 건강하시길 빌어 마지않습니다. 긴 시간 귀하신 시간 내어주신 김윤기 前 본부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오늘도 밤낮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공단 직원 여러분, 그리고 지난 40여 년간 공단에 몸담으시고 지금의 서울시설공단을 만들어 주신 여러 선후배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공단은 앞으로의 40년, 더 나아가 100년의 세월까지도 더욱더 성장하고 서울시민의 안전과 편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금도 서울의 곳곳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계신 서울시설공단의 많은 직원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서시공스토리는 다음 호에 또 유익하고 즐거운 인터뷰로 찾아뵙겠습니다.
인터뷰 = 유홍선, 김우중 사진,글 = 최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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